때로는 무언가에 홀리듯, 아무 생각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일상 탈출 이야기

산 이야기/도보산행

화창한 봄날 덕룡산 등산로 개척 이야기

검은고독 2023. 3. 28. 15:13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다.

 

1989년 화창한 봄...4월 5일

 

주말을 맞아 그동안 수없이 지도를 훑어보며 등산로 개척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만덕산으로 향했다.
강진 만덕산에서 시작하여 해남 두륜산까지 등산로 개척을 위한 첫 답사를 시작하는 날...

 

그동안 안내 등산을 해 오면서 인연을 맺은 산악인 4명과 함께 만덕산 들머리인 옥련사에서 시작하여 만덕산, 석문산, 덕룡산, 주작남서릉, 오소재까지 이어지는 직선거리 약 17km에 이르는 오솔길 하나없는 등산로 개척은 2박3일 일정으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12명의 산악회원을 모집하여 금릉산악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은 산악 활동과 함께 덕룡산 등산로 개척에 들어갔다.

그날 이후 매주 주말이면 홀로이 또는 동호인들과 톱과 낫을 들고 덕룡산을 찾아 등산로를 개척하면서 등산로 거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50m 줄자로 실측을 하여 이정표도 설치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덕룡산 등산로 개척은 많은 산악들의 수고로 오늘날 전국의 등산객들이 덕룡산을 찾고 있다.


지금은 등산로 바위 곳곳에 아무렇게나 철물을 박아놔서 보기에도 그렇고 안전사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무지하기 짝이없는 자들의 행태로 말미암아 이렇게 덕룡산은 병이 들어가고  봉우리 명칭 역시 아무렇게나 이름지어 표식을 해 두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 <사진설명>  

소석문에서 덕룡산으로 진입하는 구간 중간 지점. (그 후 사진 좌측으로 등산로를 수정하였다.)

<문제군, 정점덕, 나,  박상규,  사진 황영주>

 

↑  나에게도 이렇게 풋풋한 시절이 있었는데....

 

↑   황영주, 나, 문제군

 

 

 

 

 

월간<사람과산> 2001년 3월호

덕룡산~주작산 종주르포

소석문~덕룡산~작천소령~주작산~오소재 12km

 

   한반도 최남단 땅 끝을 향한다. 강진과 남창을 연결하는 81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자, 우측에서 엄청날 정도로 커다란

몸짓을 한 공룡이 날카로운 가시를 등판에 수두룩 매달고 일행의 차를 압도하며 꿈틀꿈틀 한참이나 앞질러 땅 끝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온몸에 돌을 둘러, 갑옷같이 두꺼운 골판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영락없는 공룡이다.

   

 

취재팀은 한 대를 수양관광농원입구 주차장에 대기시키고 거슬러 달려 소석문에 다다랐다. 소석문은 석문산과 덕룡산중앙의 협곡을 말한다.

 

 연달아 이어진 만덕산과 석무산 사이를 대석문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협곡이라는 이름에 걸게 양림한 덕룡산과 깎아지르며 암벽을 이룬 석문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현란하게 치솟아 있다.

   

 

겨울인데도 제법 물소리가 나는 봉황천을 건너 덕룡산 안내도를 옆에 끼고 올랐다. 잡목과 덩굴이 숲을 이루었지만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의 여유를 두고 있다.단숨에 오를 것 같이 가볍게 보였던 길은 잠시 완만하다. 금새 비탈을 이루며 장딴지에 심한 자극을 가져온다.경사면이 가파를수록 사용하는 근육은 아래로 내려가기만 한다.

  

 

 20여 분을 올라 자그마한 봉우리를 지나자 "왜 이리 덥지" 라는 한마디에 다들 갑자기 위아래 옷을 벗어 버린다. 겨울산을 대비하여 내의며 두꺼운 파일 자켓을 껴입었던 까닭이다. 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뿐이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팬티바람이 되었던 일행은 가볍게 옷차림을 한 후에야 길을 나선다.

   

 

빨간 페인트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등산로를 따라 잡목 숲을 헤치고 바위틈을 비집고 암사면에 설치한 굵직한 밧줄

을 타며 한참 오르고 내려섬을 반복하자 이제 겨우 1봉이다.

   

 

봉황을 빠다 닮은 봉황리가 우측으로 내려다보이며 앞에 놓인 봉황저수지 또한 그대로 봉황이다. 파랗다 못해 짙푸른 수면이 살얼음을 형성하고 살포시 산을 얹고 있다. 따뜻한 봄볕에 부풀어 오른 흙에 못 이겨 겨우내 얼어있던 돌멩리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대로 덕룡산이 가라앉을 판이다.

   

 

뿌옇게 낀 가스로 인해 출렁이는 남해의 망망대해가 보이지 않음이 아쉽지만 강진만 뒤로 솟구친 산세들이 다도해의 섬들처럼 가스 위에 아스라히 드러난다. 웅장한 암봉들은 남서쪽을 향하여 도열하고 햇빛에 그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취재팀을 유혹하고 있다.

   

 

협곡에는 산죽이 군락을 이루며 시원한 바람이 분다. 대나무 이파리 시퍼런 그늘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땀을 훔치던 이훈태 기자가 한마디한다. "바람 팔아먹었으면 좋겠다." 봄바람은 그렇게 지친 몸에 생기를 가져다 주었다.

   

 

진달래 나무가 수두룩하게 비탈을 오르는 2봉에 도착하니 12시30분이다. 가지런히 난 지나온 길을 쳐다보니 석문산 뒤편으로 만덕산의 봉우리가 솟구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니 이도가 긴 자국을 낸 서기산이 보인다. 한 뼘 건너 월출산은 언뜻 언뜻 실루엣으로, 수줍음을 보이며 머리끝만 내 보인다.

 

 

  2봉을 지나 내려오니 굉음이 산언저리에서 들린다. 만덕광업소에서 흩날리는 돌가루들이 뿌옇게 광업소를 뒤덮는다.

 

 

주변으로 바위들은 무참히 절개되어 참혹하게 파헤쳐졌고, 그나마 덜 훼손된 암석들은 곪은 상처를 드러낸다. 문명의이기는 그 수단을 이용해 기생충 마냥 공룡의 살점을 뜯어내며 피를 빨고 있다. 덕룡산은 땅끝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몸부림으로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3봉에 오르자 작은 암봉들을 넘어 4봉으로 짐작되는 봉우리가 머리를 치켜들고 그 너머로 한참이나 멀리 좌우로 동봉(5봉)과 그 곁에 또 하나의 비슷한 높이로 솟아 있는 서봉(6봉)이 4봉 머리 위에 비춘다.

   

 

눈길을 돌릴 새도 없이 강진만은 수천 역사를 살아온 듯 말없이 흐르며 망망대해를 접한다. 간척지라 불리우며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땅에는 넌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잔뜩 열을 맞춰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엉덩이 하나 붙일만한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바람을 두 팔 벌려 잔뜩 품어보아도 흘리는 땀은 멈출 생각 않고 도도한

강진만 마냥 넘쳐난다.

 

3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서면 만덕광업소로 내려서는 표지판이 있다. 지닌해 군청에서 공공근로사업으로 설치한 표지판 거리상태는 도대체가 맞지 앟는다. 곤두서며 길게 늘어선 바위를 타고 올라서니 4봉이다. 봉우리를 내려서자 채석장에서 휩쓸린 분진이 암릉을 넘어서며 돌 바람을 일으킨다.

  

 

 한참을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주봉인 동봉(420m)이다. 정상에는 금릉산악회에서 세운 동봉 푯말이 있다.

   

 

차설광씨에 따르면 도암면에서 바라볼 때 더욱 높고 우뚝 선 산이 동봉이라고 한다. 덕룡산의 주봉은 최고봉인 서봉이 아니었다. 단순히 키 높이만을 따지는 서양의 합리주의 관점에는 벗어나지만, 유구한 세월을 살며 그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부르던 명칭이 의미가 있으리라.

  

 

 호남정맥 월출산에서 이어진 산줄기는 다산초당을 품은 만덕산(409m)을 지나 석문산을 일구고 덕룡산, 주작산을 거

쳐 두륜산(673m), 달마산(481m), 도솔봉(421m)에서 땅끝 사자봉(125m)까지 이어진다.

   

5분 여 내려오자 산죽이 키만 하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훑어 지나자 드디어 서봉(432.0m, 6봉)이다. 멀리 암릉을 따라가다 강진만을 향해 머리를 내민 주작산이 보인다. 신년이면 신전면 사람들이 해맞이를 한다고 한다.

   

 

서봉을 내려와 안부에 내려서자 억새가 산을 포근히 뒤덮으며 산정이 황금벌판을 이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사리 군락지다. 이곳은 수양마을로 내려서는 길목이다.

  

 

 7봉을 내려서는 길목이 섬뜩하다. 낭떠러지를 향해 곤두박질 할 듯한 수직의 길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발길은 길을 만들고, 주의를 기울이며 조마조마하자 이내 아래다. 일행의 마음을 잔뜩 긴장시켰던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가 올려다

보니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촛불의 형상이다.

  

 

 4시가 다 되어 8봉에 오르니 첨봉에서 주작산까지 억새의 은빛이 포근하다. 위태로웠던 암릉을 지나 억새의 품에 안기

고 보니 다들 여유 있다.

  

 

 지친 발을 이끌다 보니 5시가 다되어 헬기장에 도착했다. 조용하다. 억새가 뒤덮여 오직 하늘만이 보일 뿐 사방은 정적만이 감돈다. 곧이어 바위장들이 맞붙어 이룬 너덜이 주작산을 향해 길을 만든다. 좌우로는 진달래와 보리수 군락이 저들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주작산 왼쪽 날개 최고봉(476m)에 오르니 5시10분이다. 바닷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 평원을 지나 올려다본 곳에 가련봉 7부 능선쯤에 가련건폭이 빛을 낸다.

   

 

내려서는 길목에 양란 재배장의 비닐하우스가 작천소령 아래 펼쳐진다. 고개를 내민 남방의 수호신이란 상서로운 의미를 가진 주작산(428m) 정수리는 임도가 지나며 털들을 무참히 훑어내고 있다.

  

 

 이튿날은 엄영섭씨 대신 차설광씨의 아들 주영(10세)이가 동참했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따라 나선 것이다. 수양농원

을 거쳐 작천소령을 오르는 길은 멀지만 지루하지 않다.

   

 

도로변의 자갈과 흙을 밟으며 바라보이는 주변의 밭에서는 남도의 햇살을 받아 보리 싹들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이 양란 재배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250두에 이르는 젖소들을 방목했던 목장이었다고 한다.

   

 

11시가 다되어 비닐하우스를 지나 이도를 타며 30여m 내려가가 빨간 표지기 하나 걸려있는 좌측 소나무 사면을 올라섰다. 가시덤불 사이를 뚫고 오름의 흔적이 남아있던 길목은 이내 사라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니까" 라는 차설광씨의 말대로 우뚝 선 익룡의 형상을 한 바위를 향해 무작정 올랐다. 하지만 거기에 길이 제대로 나 있을 리 없다. 온통 잡목과 가시덤불이라 사정없이 옷깃을 잡아당긴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억새에 가려 일행들이 사라진다.

   

 

그렇게, 잡목 숲을 20여 분을 지나 익룡의 머리에 오르자 산정은 온통 주작이 깃털을 곤두세운 양 뾰족한 선 바위들이 하얀 깃털모양으로 날카로움을 드러낸다. "완전히 수석이네." 이훈태 기자의 말대로 수석이 밭을 이룬다.

   

 

거슬러 표시된 파란 화살표를 따라 쫓아가다 보면 요리조리 길은 바위틈새를 비집고 암릉을 넘어서며 잘록이의 대나무 숲을 헤쳐 잘도 돌아간다. 암봉을 넘어서자 협곡이 길을 내고 산죽의 푸른 이파리가 날리며 바람을 만든다.

   

 

너덜지대를 지나 오르다보니 가파른 산죽 길이 하늘금을 형성하며 하늘로 통한다. 우측으로 도림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지나온 북동쪽으로 만덕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강진만 앞에 펼쳐진 신전면의 마을들이 오밀조밀하다. 곳곳에 형성된 저수지는 속을 알 수 없듯 짙푸르다.

  

 

 커다란 암석이 길을 가로막는다. 길이 우측으로 돌아 다들 우회하지만 주영이가 길게 뚫린 좁은 틈새로 쉽게 빠져나가며 지름길을 택한다. 암봉에 올라섰을 때 뒤늦게 온 유두선씨가 우회하는 것을 거부하고 틈새로 빠져 나오다 진퇴양난이

다.

   

 

협곡사이로 동백군락지가 보인다. 눈길은 관악사의 사찰을 지나 다시 주릉을 향한다. 덕룡산이 공룡의 등짝 같은 커다란 봉우리로 솟구쳐 있다면 주작은 무수한 암봉이 오밀조밀하게 이어져 있다.

   

 

절벽 틈을 지나며, 동백이며 억새가 자리하여 산죽이 길을 덮어 단조로움을 잊게 한다. 관악사를 지나 장수저수지 위편427봉, 차설광씨가 거풍이나 해야겠다 면서 갑자기 바지를 내린다. 의아스런 기자에게 거풍이란 임금이 짬을 내어 중요한 것을 바람에 드러내며 땀을 식히는 것이라고 한다.

 

 

   427봉에 오르니 12시40분이다. 평평하게 서너 평되는 정상에는 오소재를 들머리로 하여 오른 목포 신목산악회 회원들이 땀을 식히고 있다. 아마추어를 자칭하며 힘든 산행을 토로한다. "완전히 산악훈련이네." "내 이렇게 괴팍한 산 처음이

구먼."

   

조그마한 암릉을 너다보니 20여 분만에 412봉이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서 나선다. 차설광씨가 바위와 덤불을 헤집

고 내려가며 아들에게 묻는다. "올해는 산 따라 다닐래?" "그럴까?" 하고 호응하며 가파른 내리막에서 바위를 잡고 발을

딛는 폼이 꽤 능숙하다.

  

 

 401.5봉에 도착하니 능선이 푸른 소나무와 어울려 색다른 풍경이다. 조심조심 내려가다 봄 햇살에 녹아든 질퍽한 흙

을 밟고 앞사람이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펑 뚫린 길이 보이자 다들 서두른다. 작천소령을 지나 올라왔던 수석의 황홀함

은 온데간데 없고, 모양새 비슷한 수백 개의 암봉을 오르내리는 사이 더 이상의 흥은 사라지고 의지만이 남은 것이다.

   마지막 봉우리인줄 알았던 362봉을 오르자 또 하나의 암봉이 곤두 서있다. 좌로 끼고 내려서니 말라 버린 소나무들이

가득한 평탄한 등산로가 나타난다. 오소재라 불리는 차도에 내려서니 4시30분이다. 바람 한 점,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그

토록 애달프던 리지 종주산행이었다. 수백 개의 암봉을 오르내리며 산행하는 자의 당연한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산행길잡이

   덕룡,주작산의 들머리는 크게 소석문, 작천소령, 오소재로 하면 된다.

   소석문에서 오를 때는 봉황천을 건너 덕룡산 등산안내도를 기점으로 오르면 주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

다. 붉은색 페인트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잡목 숲을 지나 1봉에 도착하면 도암중학교 뒤편에서 시작하는 산길과 만난다. 2봉을 지나 3봉과 4봉 사이의 안부에

는 만덕광업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동봉(5봉)을 지나 서봉(6봉) 안부로 내려서도 수양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8봉과 첨봉 사이 무덤 옆으로도 하산길이 있다. 덕룡산은 탈출로가 많다.

   작천소령에서 오를 때는 수양관광농원 앞에 주차를 시키고 20분 정도 오르면 양란재배장 비닐하우스에 도착한다. 오

소재로 하산코스를 잡으려면 비닐하우스를 지나 임도를 타고 30여m 내려서면, 빨간 표지기 하나가 사면으로 보인다. 초

입의 등산로를 찾기는 어렵지만 눈앞에 보이는 암봉을 바라보고 10여분 오르면 등산로를 만난다.

   오소재를 들머리로 잡을 때는 오소재에 주차를 하고, 도로를 건너 정면에 보이는 암봉을 바라보고 소나무 숲에 들어서

면 길이 훤히 보인다.

   소석문에서 작천소령까지 암릉을 종주하려면 약 6시간, 작천소령에서 오소재까지는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산행시간

은 어디까지나 암릉을 해본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체력이 약한 초보자를 동행하는 경우에는 소석문에서 작천소

령까지의 코스가 무난하다.

   작천소령에서 오소재 구간은 암사면에 설치된 밧줄이 얇고 낡았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초보자라면 반드시 보조자

일을 갖고 전문가와 함께 가는 게 안전하다. 암릉에서는 식수를 구할 수 없으니 미리 준비해 가야한다.

   *교통 및 접근

   덕룡,주작산을 찾아가려면 강진과 해남을 기점으로 해야 한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진은 06:10~18:00까지

50~7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5시간 10분 거리로 요금은 15,700원이다. 해남은 07:20~1:55까지 8회 운행하며 5시간30

분 거리로 요금은 16,100원이다.

   광주,목포지역에서는강진과 해남을 오가는 버스 편이 무척 많다. 광주(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강진은 05:00~22:00

까지 20분(직행), 30분(직통) 간격으로 있다. 요금은 6,100원이다. 목포(공용버스터미널)에서 강진은 06:10~19:30까지

40회 있다. 1시간 거리로 요금은 3,300원이다.

   소석문에 접근하려면 강진읍내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해남으로 향하다 보면 813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

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813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도암면 석문리 도암 중앙초등학교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

회전하여 도로변을 따라 1km쯤 가면 소석문에 다다른다. 이곳에 주차를 시켜놓고 봉황천을 건너면 들머리임을 알리는

등산안내도가 있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강진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15~20:15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남창행 군내버스를 이

용하면 된다. 작천소령에 접근하려면 신전행 군내버스를 이용 수양관광농원 입구에서 하차 관광농원까지 2.5km로 약

30분 소요된다. 오소재에 접근하려면 해남에서 06:40~19:30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북일행 시내버스를 이용

하여 오소재에서 하차하면 된다. 강진읍내에서 갈 때는 약 30분마다 운행하는 남창행 버스를 이용해 만월마을에서 하차

하여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강진교통 전화번호 061-432-9618~9, 해남교통 061-553-8826).

   *잘 데와 먹을 데

   덕룡산, 주작산 주변에는 작천소령 가는 길목에 있는 수양관광농원061-433-3456, 토담집, 방갈로 각각 5만원 정도)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다. 강진읍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값싸고 편리하다. 군청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

서 걸어서 10분내에 프린스장(061-433-7300)이나 그린모텔(061-434-5985)이 있다. 주변에는 아침식사가 되는 오케이

식당(061-432-8072)에서 백반(3,500원)을 전문으로 하며 20여 가지가 넘는 반찬이 나온다. 대명회관(061-433-7812)

에서는 생삼결살, 생목살, 돼지갈비, 비빔밥이 5,000원이고 백반이 4,000원이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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